
수면 압력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1부에서 1분 만에 끝내는 ‘수면 질환 자가진단’을 알아봤다면, 2부에서는 ‘왜’ 우리가 잠들고 깨는지, 그 핵심 원리를 파헤칠 차례입니다. 우리는 흔히 피곤하면 잠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수학적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카이스트 김재경 교수가 설명하는 수면 압력과 우리 몸의 생체 시계, 1주기 리듬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이 두 가지 힘이 어떻게 우리를 잠들게 하고, 또 개운하게 깨어나게 만드는지 그 과학적 원리를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쌓이면 터진다! [수면 부채]의 무서움
혹시 “주말에 몰아 자면 되지”라고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도 우리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김재경 교수는 잠이 부족한 상태를 ‘수면 부채 (수면 빚)’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사채 빚은 안 갚고 나를 수 있어도, 수면 빚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매일 4시간만 자게 한 그룹과 6시간을 자게 한 그룹을 비교했습니다. 놀랍게도, 일주일 정도 지나자 두 그룹 모두 ‘적응됐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주의력 테스트(PVT) 결과는 달랐습니다. 4시간 잔 그룹의 뇌 기능은 한 달 내내 계속 나빠졌습니다. 뇌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이것이 바로 수면 부채의 무서움입니다.

⚠️ “몰아 자기”의 2가지 맹점
주말에 잠을 몰아 자는 것이 수면 부채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1. 이자 발생: 주중에 빚을 진 동안(잠이 부족한 동안) 뇌 기능 저하, 노폐물 축적 등 ‘이자’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2. 시차 발생: 주말에 늦게까지 자는 것은 빛을 봐야 할 때 보지 못하게 만들어, 마치 해외여행을 간 것처럼 ‘시차’를 유발합니다. 이는 1주기 리듬을 망가뜨립니다.

밤 9시, 잠의 스위치가 켜진다? [1주기 리듬]의 정체
그렇다면 우리 몸은 어떻게 잠들 시간을 아는 걸까요? 바로 1주기 리듬(Circadian Rhythm) 덕분입니다. 이는 약 24시간 주기로 반복되는 우리 몸의 생체 시계입니다.
영상 속 그래프의 ‘노란색 선’이 바로 이 1주기 리듬을 나타냅니다. 이 시계는 뇌의 ‘시교차상액’이라는 곳에 있으며, 눈으로 들어오는 빛 정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리듬에 따라 우리 몸은 밤 9시경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졸음을 유도하고, 아침 7시경 분비를 멈춰 우리를 깨웁니다. 마치 몸 안에 24시간 작동하는 정교한 알람이 있는 셈이죠.

[수면 압력]이란 무엇인가 (feat. 아데노신)
수면 압력은 1주기 리듬과 함께 잠을 조절하는 두 번째 핵심 요소입니다. 영상 속 그래프의 ‘검은색 선’에 해당하며, 깨어 있는 동안 계속 쌓이는 ‘잠에 대한 빚’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뇌 활동(ATP)을 할 때마다 그 부산물로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 쌓이는데, 이것이 수면 압력의 실체입니다. 아데노신이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카페인이 바로 이 아데노신 수용체를 잠시 막아 졸음을 쫓는 원리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 이 수면 압력(아데노신)은 빠르게 분해되어 떨어집니다. 즉, 잠은 이 압력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요 정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핸드폰을 100% 충전하지 않고 20%만 충전한 채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뇌에 쓰레기(노폐물)가 쌓이고 에너지도 부족해 하루 종일 ‘저절력 모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꿀잠의 골든타임, [수면 미적분]이 답을 찾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확히 ‘언제’ 잠들고 ‘언제’ 깨야 할까요? 김재경 교수는 이 두 가지 힘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 상황 | 수면 압력 (검은선) | 1주기 리듬 (노란선) | 결과 |
|---|---|---|---|
| 잠들기 직전 (밤) | 높음 (최대치) | 낮음 (멜라토닌 분비) | 압력이 리듬을 이겨 졸음 발생 |
| 개운한 기상 (아침) | 낮음 (수면 중 해소) | 높음 (멜라토닌 중단) | 압력이 리듬보다 낮아져 자연스럽게 깸 |
가장 이상적인 기상은 영상 속 데프콘 님의 그래프처럼, 수면 압력(검은선)이 1주기 리듬(노란선)보다 정확히 낮아지는 그 교차점에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알람 없이도 자연스럽게 깨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피를 뽑아 아데노신을 측정한 것도 아닌데, 이 그래프를 어떻게 그렸을까요? 이것이 바로 ‘수면 미적분’의 영역입니다.
김재경 교수는 미분(속도)과 적분(예측)의 개념을 빌려 설명합니다. 내비게이션이 현재 속도(미분)를 바탕으로 도착 시간(적분)을 예측하듯, 연구팀은 개인의 수면 데이터(언제 자고 깼는지)를 수면 미적분 방정식에 넣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 압력과 1주기 리듬의 변화를 예측(적분)해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면 미적분 모델의 핵심입니다.
마무리: 2부 – 내 몸의 리듬을 이해하라
지금까지 우리를 잠들게 하는 두 가지 핵심 힘, 수면 압력과 1주기 리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잠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수면 부채라는 빚을 갚고 뇌를 청소하는 적극적인 과정입니다.
또한 수면 미적분 모델을 통해 우리가 왜 규칙적으로 자야 하는지, 왜 주말에 몰아 자는 것이 위험한지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학적 원리를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다음 3부에서는 이 수면 압력과 1주기 리듬을 활용해 ‘수학적으로 가장 개운하게 일어나는 방법’과 실전 팁을 총정리해 보겠습니다.